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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바보-당신,구동백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있나요?

결론을 바로 얘기하자면 현실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그런 순수하고 착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린 아마 그를 거부할 확률이 클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구동백과 같은 순수한 사람들을 절대로 볼수없는건 아니다. TV 인간극장류의 인물다큐멘터리를 시청하다보면 정말 "대단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성실하고 순수한 성품의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답답한 사람,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지수 같은 대스타가 점심대접을 하겠다는데 융통성 없이 "지금은 점심시간이 아닌데요"라고 거절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당신 주위에 있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저런 유도리(일본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말인  융통성,여유로 바꿔써야 한단다) 없는 놈"이라고 당장 타박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구동백의 표현이 틀린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속의 우리는 수많은 융통성에 둘러쌓여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것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에 구동백의 그런 말이 불편하게 느껴질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가지고 있던 그런 성격때문에 한지수는 구동백을 가짜연애의 대상으로 삼을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수도 있는 일을 그는 큰 고민없이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할수 있다는 그의 원칙이니까 말이다. 그는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한지수를 위해 몸을 던진다.

동생 상철을 위해 1년간 통학비를 아껴 자전거를 사줄 정도로 착하고 순수했던 한지수 역시 세파에 시달리고 연예계 물을 많이 먹어 어느덧 물질로만 마음을 전달하려는 김강모의 사랑이 전부인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변해온 그녀였기에  구동백의 그런 진실된 마음을  처음에는 '착한척' 한다고 느껴져 몹시도 부담스럽고 이질적으로 느끼며 자신의 식대로 그를 대한다. 하지만 돈으로도,차로도,큰 상가로도 구동백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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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순수하고 소중한 그런 심정을 가진 이들을 '무능하고 바보같다'는 이유로 업신여기는 일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던것이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당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당신 옆에 구동백과 같이 착한 사람이 한,둘 있을것이다. 우린 그 착한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수 있을까 고민은 해도 그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는 별로 되있지 않은듯 하다.

그바보를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은 여성들은 구동백같은 사람 어디 없느냐고 하소연(?)을 많이 한다. 찾아보면 분명히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있다. 100% 확실치 않지만 그는 돈이 많지 않을것이고 주위사람들에게 답답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구동백이란 사람을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는 이유는 그의 옆에 대스타 한지수라는 화려한 조명이 구동백을 비추고 있기때문은 아닐까? 한지수같은 휘황찬란한 조명은 없지만 분명 구동백이란 보석은 당신옆에서 작은 빛을 발하며 존재하고 있을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빛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고있지 못할뿐이다.

동화 파랑새의 틸틸과 미틸(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식 발음으로 틀린 표기임)도 자신의 집에 원래부터 존재하고있던 파랑새(희망과 행복)를 알아보지 못하고 온세상을 헤매는 꿈을 꿨듯이 우리도 곁에 있는 파랑새를 외면하고 밖에서 소중한것들을 찾아 헤메고있었던것은 아닐까?

또 한가지....

이 거칠고 힘든 세상과 사회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아닌 돈을 제일로 생각하는 물신만능주위가 사라지지 않는한,
어떤 분야던지 남을 밟고서라도 1등만을 해야한다던 경쟁만능주위가 사라지지 않는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위가 사라지지않는한,

현실세계속의 구동백들은 우리와 당신 그리고 나에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며 살아갈것이다.

우리 지금보다 조금만 더 착하게 살아보는건 어떨까?

구동백의 귀환을 위해서.....